
주호를 등원시키는 아침 9시. 어린이집까지 가는 10분 동안 어머니께 전화를 건다. 4일 동안 주호가 아팠던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했다. 잘됐구나, 어머니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손주에 대한 걱정인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4일 동안 고생했겠구나는 생각을 하셨다. 그 감정이 숨소리에 섞여 나왔다. 나는 ‘어머니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랑해요!’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쩌자고 코 끝이 찡해지는 걸까”
사랑한다는 말 끝에 왜 코끝이 찡해지는지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엔 너무도 많은 시간이 쌓여있다. 내가 주호를 키우듯, 어릴 때부터 나를 키우셨을 어머니의 마음, 몇십년의 시간들이 한 번에 밀려온다. 그 거대한 파도에 겨우 코끝이 찡해지고 마는 거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다. 그저 코끝이라니.
30대 초반. 빨리 결혼하길 바라는 부모님 마음을 몰랐다. 결혼 후엔 빨리 아이를 갖길 바라는 부모님 마음도 몰랐다. 그저 사회가 정해놓은대로 살아가는 게 싫다는 반항심으로 최대한 버티면서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다. 결혼이 조금 늦어졌다. 결혼 후 4년 뒤 첫 아이를 가졌다. 5년 뒤엔 둘째가 생겼다.

“오십이만 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들”
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찾는 두 아이를 바라본다. 왜 이 행복을 이제야 만났을까. 어머니는 나를 이 세계에 하루 빨리 도착하게 하고 싶으셨던 걸까. 고운 피부를 만지다 아이 배에 코를 비벼본다. 꺄르륵, 그 짧은 1초 웃음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니. 찡해지는 코끝 만큼이나 작은 순간들로 나는 살아가는구나. 이런 순간들을 다 모아서 하루를 만들 수 있다면. 오십이만오천육백분의 귀한 시간처럼, 내 인생이 이런 순간들로 가득찬 하루가 있다면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는 어머니 생일이 아니면 하지 않았을 ‘사랑해요’ 라는 말을 했다. 이젠 매일 해보자. 코 끝이 찡한 순간들을 모으기 위해서, 나보다 여생이 짧을지 모를 어머니에게 코 끝이 찡해질 순간들을 매일 선물하기 위해서 말이다. 행복에 숨이 멎어도 좋겠다.
